우리가 서로의 등대가 아니더라도
W. 절반
세상은 아직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수가 줄어든 TV 채널을 아무런 생각 없이 돌리다 보면, 어느 정치인의 연설이 기분 나쁜 톤으로 귀에 들어옵니다. 내용은 듣지 않아도 뻔합니다. 정부는 지금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국민 여러분이 의지를 가지고 계속 살아 나가 주길 바란다는 내용일 것입니다. 뉴스가 끝나면 뒤이어 힘들 때는 주변의 복지 센터를 찾으라는 흔한 공익 광고가 나올 것입니다. 당신은 문득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저 화면 너머의 사람들은 절대로 죽을 일 없을 거란 생각을요.
한 달 전, 겨울의 초입. 다수의 실종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처음에는 경찰도, 정부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실종자들을 찾기는커녕, 점점 실종자들이 늘어나기만 했습니다. 건재할 줄만 알았던 사회 체계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할 즈음 정부는 실종의 원인을 현대 과학으로는 알아낼 수 없는 현상이라고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실종자들에게는 단 한 가지의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삶에 대한 의지가 타인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이들이었습니다. 사는 것이 죽음보다도 고통스럽다고 생각해서, 차라리 어느 날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게 해달라는 소원을 비는.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신은 그 소원을 어느 날부터 갑작스럽게 이루어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로 세계는 마치 무채색과도 같은 채도를 띠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그 채도를 맞이한 날에는 마치 수없이 많은 소설로 읽었던 인류의 마지막을 목격하기라도 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죽지 못해 살아가는 사람들과 살지 못해 사라지는 이들이 공존하는 세계. 그것이 지금의 세계를 정의하는 문장입니다.
뉴스 소리를 뚫고 갑자기 스마트폰이 두어 번 울립니다. 조금 낯선 소음입니다. 세상이 이렇게 된 이후로는 그 흔한 광고 문자도 잘 오지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 당신의 스마트폰은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신호를 분명히 보내고 있습니다.
메시지를 확인하는 순간, 당신은 자연스레 눈을 의심합니다. 그야 이 사람에게서 연락이 올 리 없으니까요. KPC의 이름이 화면에 떠있습니다. KPC는 이미 한 달 전에 사라지지 않았던가요. 그것이 실종 사건이었든, 다른 이유에서였든요. 그러나 의문을 길게 이어갈 새도 없이 메시지가 한 통 더 도착합니다. 당신은 길지 않은 메시지를 몇 번이고 읽어내립니다.
[탐사자.]
[같이 바다 보러 가지 않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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