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바다를 당신께 쏟아드립니다
W. 영민
사별, 불가항력의 이별, 혹은 과거……. 사람들은 꼭 소중한 기억 하나는 마음에 품고 살죠. 그것은 사람을 지탱하는 원동력이자 또한 하염없이 갉아먹을 하나의 행복입니다. 그리고 단지 세월의 흐름 탓에 사람은 그 소중한 것을 마모 시키고 잃어버립니다.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그때의 시간, 그때의 감정, 그것이 잊혀짐의 과정. 21세기 사람들은 그런 기억을 온전한 형태로 보존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고 결국 시간을 잘라내어 액체화 시키는 방법을 개발했습니다. 하지만 액체화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그 기억을 당사자가 다시 볼 수 있어야 하니까요. 연구원들은 그 액체를 몇 번에 실험을 거쳐 식용의 형태로 만들었고 그것이 바로 23세기, 한 명의 국민 당 한 병이 제공되는 기억 주스의 시작입니다.
23세기 정부에는 사고(思考)부가 개설되었습니다. 그 산하에는 기억관리청, 시간보호청, 영구기록정보청이 존재합니다. 인간의 사고가 나라의 존망을 결정 짓는 것에 대해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판단 하에 이루어진 것이었죠. 기억관리청은 모든 국민에게 기억주스 2L씩을 제공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습니다. 그것을 한 모금 마실 때마다 그때의 기억으로 들어가 순간들을 즐기고 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 한 병이 끝나면 그 기억 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게 됩니다. 기억은 다시 천천히 세월에 따라 마모되겠죠. 네, 이것은 정부에서 진행하는 '아름답게 기억과 이별하기' 정책입니다. 2L 만큼의 기억을 소모하는 동안 충분히 그것을 되새기고 사랑하다가 보내주라는 취지로 시행되는 것이죠. 잘라낼 수 있는 기억은 단 24시간, 2L.
KPC의 기억 주스는 아껴 마셨지만 이제는 한 모금밖에 남지 않았어요. 탐사자는 그것이 자신과 관련된 기억이라는 것만을 알고 있습니다. 어느 날, 한 모금 정도 남은 주스를 바라보던 KPC가 탐사자에게 제안합니다.
"혹시 나랑 같이 내 기억과 이별하는 걸 보러 가지 않을래?"
이 바다맛의 주스가 바닥을 보이면, 너와 내 과거도 돌이킬 수 없는 추억이 될 테니까.